이런 번역가 또 없습니다
세상을 번역하는 남자, 황석희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영화번역계에 이런 캐릭터는 없었다. SNS로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과 함께 덕질하는 번역가.
영화 <데디풀>의 약 빤 드립에 세간이 떠들썩했을 때도, 한동안 이어지던 주변의 사랑발림에도 휩쓸림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관객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담담하고 흔들림 없이...
'믿고 보는 번역가' 황석희,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
이름 황석희
직업 영화번역가
나이 38
사는 곳 일산
혈액형 B
성격 한량
자주 쓰는 말(입버릇) 그 영화 저 주세요
수면 시간 새벽 2~4시에 취침.7~8시간 수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커피를 내린다
나의 장단점 사람에게 모질지 못한 게 장점이자 단점
요즘 주된 관심사 자막에 대한 관객의 반응
인생 좌우명 "인생에 모토 같은 게 있으면 피곤하다"
가장 힘이 되어준 말(댓글) "자막이 귀로 들리듯이 이해됐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일 아내와 결혼한 일
가장 후회하고 있는 일 순진하게 사랑을 믿은 일
현재 나의 고민 직업과 직결된 건강(허리, 손목, 목, 눈 등)
고치고 싶은 안 좋은 습관 일을 무리해서 하는 습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우리 집
가장 행복했던 최근 기억 어제 아내가 날 주겠다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왔을 때
꼭 이루고 싶은 것 영화번역 장인
나를 한마디로 정의해보자 한마디는 너무했고 두 마디만. 영화번역가, 남편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전은 꿈이 아니라 일단 한발이라도 내딛고봐야 하는 현실이다
혹시 첫인상에 대해서 말씀 많이 듣지 않으세요? 누굴 닮았다거나...(웃음)
누굴 떠올리셨어요? 닮았다고 하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그게 극과 극이더라고요. 예전에는 머리가 많이 길었어요. 그래서 컨디션 좋은 날엔 성시경 씨 닮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김동률 씨 얘기도 좀 들었어요. 하지만 컨디션 나쁜 날에는 조정치 씨.(웃음) 근데 제가 생각해도 닮긴 했어요. 좋아하는 분이고 음악도 워낙 좋아해서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내가 좀...
그럼 지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성시경 씨 닮은 거로 결론 내죠. <데드풀> 번역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실제 보이는 이미지랑 많이 달라서 더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 것도 있어요. 그런 얘기도 많이 듣죠?
네 많이 들어요. <데드풀> GV(관객과의 만남)가 있었는데, 번역가가 GV 하는 일이 최초였거든요. 관객들이 번역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연 이벤트였는데, 그게 매진이 됐어요. 사람들이 많이 궁금했나 봐요. 근데 다들 저런 사람이 나올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어요. 의외로 정상적인 사람이 나왔다고.(웃음)
번역가라는 직업에 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드라마 번역을 오래 하신 것 같던데요, 영상 번역은 드라마부터 하신 건가요?
경력이 없으면 드라마 번역도 안 시켜줘요. 처음엔 국방TV 다큐멘터리나 인지도 낮은 토크쇼 번역을 1년 넘게 한 것 같아요. 그 뒤로 내셔널지오그래픽만 1년 반을 작업했죠. 일도 많고 또 다큐멘터리이다 보니까 지겹고... 그때는 드라마 한 시즌만 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떼를 써서) 하나 하게 됐는데, 그 뒤로는 드라마 번역만 6년 가까이 했죠. 그래서 극장 일을 지금처럼 하기까지는 7~8년이 걸렸어요.
드라마 번역하실 때도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아마 영상 번역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왜냐하면 보수가 너무 차이가 나거든요. 어느 정도 안정된 클라이언트를 가지고 정착해서 일했을 때 회사원 정도로 받을 수 있지만 그 전가지가 너무 힘든 거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번역료 제일 많이 받는 분과 케이블 번역가를 따지면, 똑같이 영화 한 편을 번역했을 때 13배 정도 차이가 나요. 저도 당시에는 이틀에 한 편을 번역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때가 더 바쁘셨겠어요.
정말 힘들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하드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은 영화사에서 마감기간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주거든요. 사실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긴 해요. 케이블 번역에 비해서 해야 할 것도 많아서. 근데 워낙 험하게 커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그래서 다행으로 생각해요. 지금 영화번역계에 저처럼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밟고 올라온 사람이 몇 명 없거든요.
외화 번역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의 흥행을 결정짓는 요소 중에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몇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흥행의 힘은 영화의 힘이지 번역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죽어 있는 영화를 번역으로 살릴 수 있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고 보거든요. 어느 정도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호박을 수박으로 바꿔놓을 힘은 없으니까요. 가끔 그렇게 믿는 분들이 있는데, 번역가가 그런 마음으로 번역하면 작품은 망가져요.
그 정도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혹시 욕심내서 작업한 작품은 없나요?
최근에 한 것 중에는 <캐롤>이에요. <캐롤>은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잘 쓰고 싶어서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작업이었죠. 지금 블루레이 출시 때문에 자막을 수정하는 단계예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새로 뜯어고치고 있는데, 확실히 내려놓고 보니까 너무 많이 보여요. '아, 이런 뜻으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영화를 보다 보면 당시의 문화나 유행어, 또는 의도한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번역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오역했거나 미세한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스스로 업데이트하시나요?
사실 자막을 업데이트할 방법은 없어요. 당시로서는 100%, 120% 힘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한 자막이지만 나중에 보면 어쨌든 오류가 보이거든요. SNS나 블로그를 통해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골라서 말을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전부 그렇게 하기는 힘든 점이 있어요.
<데드풀> 이후에 더욱 주목을 많이 받으면서 번역하는 스타일이나 작업 방식이 변한 것은 없나요?
작업 방식이 변한 것은 없지만 생각이 변한 건 있어요. 이전부터 제가 목표로 했던 게 '관객과 친한 번역가'였거든요. 그 방향으로 가는 건 <데드풀> 전이나 후나 같은데, 생각이 조금 단순해졌어요. 좋은 번역이라는 건 어쨌든 소비자가 좋아하는 번역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번역가로서의 제 소신이나 고집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데드풀> 후로는 '어떻게 하면 관객이 좋아할까'를 생각해요.
번역가에 있어서 언어 능력 이외에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번역뿐만 아니라 문화에 관련된 일은 배우고 익히고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경지가 있고, 때려죽여도 못하는 그 외적인 것들이 있어요. 서로의 장단이 있겠죠. 감이 좋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톡톡 튀고 위트 있는 표현 위주로 구사할 수 있다고 하면, 감이 없어도 오랫동안 노력하고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온 사람들은 안정적인 번역을 구사하죠. 감이라는 건 어떻게 가르칠 수 없는 거니가요. 그런 분들은 탄탄하고 안정적인 번역을 구사하시는 능력을 키워가면 될 것 같아요. 이건 누가 잘 나고 못 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번역가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역시 언어 능력이겠네요?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번역가의 자질이면 언어적인 센스가 첫 번째이긴 해요. 그 언어적 센스가 글만 잘 쓰는 것은 아니고 글 센스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드라마, 영화, 만화, 아니면 SNS에 떠도는 글들, 정치, 세계정세도 그렇고. 많이 알아두면 알아둘수록 오역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많이 줄죠. 많이 알아야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은퇴하는 날까지 그런 문화 인풋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해요.
혹시 인풋을 위해 자주 가시는 커뮤니티가 있나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커뮤니티는 거의 다 가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 얘기가 많은 커뮤니티는 매일 수시로 들락날락해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어떤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런 것들도 보는 거죠. 해외 영화잡지 기사도 다 읽어보고, SNS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들도 다 보려고 해요.
바쁘시겠어요. 작업도 해야 하고, 커뮤니티도 다 돌아보고 하려면...(웃음)
그냥 작업하다가 쉬는 시간에 논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뒤지는 거죠.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하는 건 사실 덕질이라고 하죠. 그 덕질이 제게 도움이 되는 거고요. 재미있어요.
마지막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황석희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관객과 제일 친한 번역가'예요. 관객들과 같이 떠들고 같이 덕질하는... 번역가 중에서 없던 신선한 캐릭터죠. 번역이라는 업이 지금은 제 사생활의 범주에 들어왔어요. 제가 SNS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건 제 업의 일부이자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죠. 한 업계에서 자신만의 캐릭터와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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