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中, 로봇 반란 32년

곽재식 소설집 / OPUS Press


 이 이야기는 한 화학자가 훨씬 더 때를 잘 빼 주는 세제를 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화학자는 재치와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변의 선배 화학자들이나 상사들을 감복시킬 만한 아름다운 정치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돋보이는 점이 있다면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손이 부르트고 또 부르트도록 약품이 묻은 시험기구 설거지를 성실히 하는 태도가 유난히 남들보다 경이롭다는 저 정도였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크게 갖고 있지도 않았다. 되려 "내가 설거지나 하려고 몇 년째 이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있나."하는 회의감에 하루하루 물 마른 콩나물처럼 시들어 가고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화학자가 1만 4426번째 시험관을 설거지하던 날, 그는 문제의 세제를 발견했다. 그 순간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왔지만, 1만 4426번째 시험관을 씻던 고난의 뒤에 이어진 일을 두고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그는 생각했다. 곧 이 세제가 나온 덕택에, 1만9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이 세제의 성능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무렵 세탁기를 만드는 회사들은 좌우로 회전하다가 상하로 진동하는 간격을 리듬에 맞춰 조정해서 뛰어난 성능으로 빨래를 세탁해 주는 '쌈바 방식' 세탁기를 팔고 있었다. 쌈바 방식 세탁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여러 개의 모터들과 다양하고 정밀한 측정 센서들, 이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훌륭한 컴퓨터가 필요했다. 쌈바 방식 세탁기는 비싸고 복잡했지만, 그런 만큼 빨래를 잘 빨아 주었다. 그것이 그 바닥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새로 개발한 세제를 넣으면 이런 좋은 세탁기를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화끈한 백색으로 빨래를 할 수 있었다. 규칙은 깨어졌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던 '쌈바 방식' 세탁기를 만들던 회사들의 판매량은 비명을 지르는 모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그때 만든 영업사원들의 실적 도표를 보면, 슬라이드에 소리 효과를 안 넣었는데도 "아아아아아악-"하는 소리가 귀에 그대로 들리는 듯하였다. 이 회사에 정밀 모터를 팔던 회사들도 망해가기 시작했고, 세탁기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던 회사들도 파산할 때 회장님 재산은 챙겨 놓고 파산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흔히 '비누 거품 충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 전자 업계의 대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후략)



한 화학자의 빨래 세제 발견이 가져온 대혼란 -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中, '로봇 반란 32년'의 서두.



Posted by 크리에이티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Arthur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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