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 매튜 메이 지음, 박세연 옮김
압바의 항아리 냉장고
나이지리아 북부의 잡목이 무성한 시골 지역에 사는 농부들은 작물을 재배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 나간다. 마을이 듬성듬성 군락을 이루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차드 호로 흘러드는 강과 개천에서 농사에 필요한 물과 영양분을 얻는다. 하지만 사막 기후 같은 고온 건조한 기후 조건 때문에 농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 빨리 상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며칠 만에 음식이 썩어 버린다. 물론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냉장고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만만치 않다. 주민들에게는 냉장고를 살 돈이 없으며, 게다가 전기 사정도 여의치 않다.
나이지리아의 북쪽 경계에 인접한 두체 주의 지가와 주립 기술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하메드 바 압바(Mohammed Bah Abba)는 오랫동안 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 왔다. 그는 1990년대에 유엔 개발 프로그램의 지가와 지역 사무소에서 파트타임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마을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그들이 겪는 문제의 어려움과 심각성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 사는 여자들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부다처제 관습에 얽매어 차별 대우를 받고, 또 푸르다(purdah)라고 부르는 종교적 규율 때문에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지냈다. 그 때문에 수확한 농장묵을 큰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은 나이 어린 소녀들의 몫이었다. 소녀들은 먼 거리를 걸어다녀야 했고, 그래서 학교에 갈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작물을 제시간에 팔지 못하면 헐값에 넘기거나 쓰레기로 버리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수입마저 줄어들고, 간혹 상한 음식을 먹어 치우다가 질병이 발생하기도 했다. 압바는 주민들이 겪는 건강, 복지, 교육에 관한 모든 문제들은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작은 실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압바가 언급하는 것처럼, '푸르다 관습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압바는 발명가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기 때문에, 뭔가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대신 전기 없이도 가능하고, 기존의 재료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으며, 보수적인 이슬람 주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내야 했다. 즉, 압바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토기를 만드는 집에서 자라난 압바는 예전에 토기가 나이지리아 사람들에게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토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에서부터 장례식에 사용하는 관에 이르기까지,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모든 일상을 구석구석 차지했다. 그러나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오면서부터 토기는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토기를 빚는 모습은 이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압바는 여전히 할머니에게서 배운 기술들을 잊지 않고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압바의 머릿속에 문득 중학교 때 배운 과학 원리가 떠올랐다. 액체가 증발할 때 주위의 열을 빼앗아 가는 간단한 원리였다.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라도 개가 혀를 늘어뜨리고 헐떡이는 까닭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땀이 증발할 때 시원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후덥지근한 우림지역보다 건조한 사막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똑같은 원리다. 즉 기온을 떨어뜨릴 수 있 가장 자연적인 방법은 증발에 있었다. 여기서 압바는 무엇을 떠올렸던 것일까? 그건은 바로 항아리였다. 정확히 말해서 항아리 두 개로 만드는 냉각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우선 큰 항아리 안에 작은 항아리를 넣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젖은 모래를 넣어 두 항아리 표면을 젖게 만든다. 그 다음에는 젖은 천으로 안쪽 항아리에 뚜껑을 씌운다. 그러면 두 항아리 사이에 있던 증기가 바깥 항아리의 표면을 통해 공기 중으로 증발하면서, 안쪽 항아리의 내부 온도가 떨어진다. 또한 젖은 모래는 단열 효과도 있다. 안쪽 항아리의 온도가 떨어지면 높은 온도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해로운 미생물의 활동도 막을 수 있다. 결국 과일과 채소를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 압바가 생각해 낸 이 시스템이야 말로 간단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항아리 냉장고는 상온보다 훨씬 차가운 온도에서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었다. 압바는 몇 차례 실험을 실시했다. 상온에서 3일만에 시들었던 채소들이 압바의 항아리 속에서는 한 달 가까이 신선도를 유지했다. 후추와 토마토는 3주 동안 숙성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24시간이면 시들었던 시금치도 12일간 신선도를 유지했다.
압바는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마를 만들고 지역에 사는 도공을 고용해 항아리를 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만든 항아리 5,000개는 주민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항아리 하나의 원가는 1달러 미만으로, 매우 저렴했다. 그 이후 압바는 원가에 10센트의 이윤만 붙여 항아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압바의 도공들은 하루에 평균 다섯 개 정도의 항아리 냉장고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이 지역 농부와 상인들은 항아리 냉장고 덕분에 농작물을 집에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체 지역에 살고 있는 10만명의 주민들에게 높은 가격을 받고 신선한 농작물을 팔고 있다. 압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음식이 상할까 봐 시장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항아리에 보관해 두었다가 살 사람이 나타날 때 팔 수 있게 된 거죠. 농가의 수입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여성들이 집에서 작물을 팔 수 있게 되면서 경제활동이 가능해졌죠. 그동안 남편에게만 의존했던 그들의 경제생활도 달라졌습니다." 여인들은 '조보'라는 음료수를 항아리에 보관해 놓고 팔기도 했다. 여기서 얻은 부수입은 비누 같은 생필품을 사는 데 썼다. 그리고 매일 먼 시장까지 걸어가서 채소와 과일을 팔아야 했던 소녀들도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2년에 걸쳐 다양한 시도를 하는 동안(모래 대신 낡은 이불을 넣어 보기도 했다) 압바의 노력은 널리 알려졌다. 주변의 찬사와 더불어 상까지 받았다. 2006년에는 10만 개 이상의 항아리 냉장고가 팔려 나갔으며 나이지리아 전역으로까지 판매가 확대되었다.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 바로 위에 위치한 에리트레아에서는 이 항아리를 좀 더 개량해 시골 외곽에 있는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인슐린 보관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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