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Droga, 영원한 매드맨
장승은 TBWA KORE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는 2002년 서른 한 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당시 그 나이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연소였다. 그런데 1968년 호주 태생의 이 남자, 데이빗 드로가는 스물 두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그후로 당신이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봤을 만한 유명한 광고들을 수없이 쏟아내며 매드맨의 돈 드레이퍼에 비유되 기에 이른다. TV광고라는 장르에서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마도 그에 의해 하나 둘 정복 당해 갔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매번 TV광고가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을 넓히고 관습을 넘으며 모든 광고인의 자존감 또한 함께 높여왔다.
이십대의 카피라이터 시절, 데이빗 드로가 광고 모음을 VHS비디오 테이프로 떠서 서랍 속에 가지고 있던 적이 있 다. 그것은 대담한 크리에이티브와 탁월한 광고 성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선배와 광고주를 반박하는 증거가 되기도 했고,스스로에게는 얄팍한 말장난 따위를 아이디어 입네 하고 꺼내지 않도록 하는 자체 검열이 되었다. 나아가, 그처럼 나도 나만의 재능으로 기존 광고에 없던 새로운 화법과 문법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빚을 진 후배 광고인이 지구 상에 어디 나 하나 뿐이랴. 해외의 어떤 광고 취준생은 유명인들이 가끔 자기 자신을 검색 해본다는 심리에 착안, 드로가가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칠때를 대비해 자기소개서를 검색광고로 띄웠다. 그는 물론 이 핀포인트 타겟팅 아이디어로 드로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칸느에서 상까지 거머쥔다. 데이빗 드로가가 세 계 광고계에서 얼마나 빅네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것을 영민하게 활용한 사례다. 이렇듯 드로가와 그의 광고는 광고인들의 국적을 불문하고 롤모델이자 텍스트가 되어왔다.
그 낡은 바이블을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다시 발견했다. 20세기의 나와 드로가가 함께 수북한 먼지 더미 속에 동면하고 있었다. 그 두꺼웠던 VHS테이프가 무형의 유튜브로 대체되는 십 수년 동안 그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그는 사치 앤 사치의 ECD를 거쳐 퍼블리시스 그룹 월드와이드 크리에이티브 총괄을 맡으며 더는 오를 수 없는 자리까지 오른다. 반면에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는 긴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상에 오른 후 서서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감이 희미해질 것 같던 그가 화려하게 돌아오는데, 바로 그의 회사 Droga5와 함께였다. 일을 주기로 한 광고주 하나없이 7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 모두가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을 자리를 그만둔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스스로를 테스트 하고 싶었다. 전통적인 광고의 틀 안에서 획을 긋던 그는 이제 틀 밖에서 자유자재로 놀며 전보다도 파괴력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Decode Jay-Z with Bing’ 캠페인이다. 유명한 힙합스타 Jay-Z자서전 출간과 Bing’s Map 론칭을 엮어 마이크로스프트,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함께 벌인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걸쳐 자서전 300쪽의 각 페이지 내용과 관련 있는 장소나 사물 - 자동차, 수영장바닥, 당구장, 접시 등에 책의 페이지를 프린트 해놓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해당 위치에서 사진 을 찍어 Bing에 업로드하여 Virtual Book 한 권을 완성하는, 온오프라인 통합 블록버스터급 보물찾기다. 압도적인 규모감과 치밀한 설계, 대담한 발상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캠페인으로 Jay-Z팬페이지의 팬은 100만 명이 늘고 Bing 가입자는 11.7%가 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암흑기를 거쳐 마침내 만물을 뜻대로 가지고 노 는 자유를 얻은 듯 보인다. 전통적인 광고의 영역 안에서 스타가 되었지만 스스로 그 성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내려온 그는 마치 짜라투스트라 같았다.
Droga 5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 꾸준 하게 공익적인 자선캠페인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유니세프의 Tap Project가 대표적인데, 뉴욕의 레스토랑들과 함께 손님들이 무료로 먹던 Tap Water를 1달러씩 내도록 유도하여 물부족 국가에 기부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사회에 변화를 일으 키는 데 관심이 있고, 이는 시인이자 환경운동가인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캠페인에서 예를 하나 더 꼽자면 클린턴 재단의 양성평등을 위한 ‘Not There’ 캠페인이다. 어느날, 패션잡지, 책표지, 포스터, 빌보드 등에 있던 여자 모델들의 사진들이 사라진다. 오며 가며 눈에 익은 광고인데 갑자기 여자가 사라져있고 대신 그 자리에는 캠페인 URL주소인 ‘Not-there.org’만 덩그러니 있다. 그날은 바로 세계 여성의 날이었고, 아직 세계가 유리천 정 없는 양성평등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였다 (When it comes to gender equality, we’re not there yet). 20 개의 브랜드들이 캠페인에 참여한 것을 보면 Jay-z와 마이크로 소 프트를 엮어냈듯 Droga5는 윈윈할 수 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엮어 영리하게 판을 크게 키우는 데에도 탁월한 재주를 지닌 것 같다. 참으로 광고하기 심플했던 시대에 광고 천재로 데뷔하여 제왕으로 군림했던 그가 이제는 전통 매체광고는 불쾌하게 끼어드는 낡은 모델이라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혁명가가 되었다는게 놀랍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고 자기부정을 통해 완벽한 트랜지션을 이뤄낸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2012 마침내 U.S agency of the year에 오른 드로가 5. 이를 두고 한 언론에서는 다윗과 골 리앗의 싸움에서 다윗(David)이 승리한 것으로 비유했다. 드로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퍼블리시스와 옴니콤의 합병은 ‘Creativity’가 아닌 ‘Efficiency’를 위한 것이었다. 거대한 메이저 대행사들은 절대 혁신할 수 없다. 광고주들 역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이상 광고회사의 규모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로가5는 포트폴리오의 2/3가 디지털 광고이긴 하지만 디지털 에이전시라 볼 수는 없다. 그저 이 시대에 맞게 진화된 최적화 된 광고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데이빗 드로가는 20년 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뛰어난 위대한 스토리텔러일 뿐이다.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가 바뀌어도 그는 영원한 매드맨이다. 그는 자격이 있다.
- 꼬마 캐릭터가 어른에게 맞고 벽에 던져지고 굴러 떨어지다가 실제 아이로 변하는 아동폭력방지 캠페인
- 이곳 저곳에서 문란한 행위를 하고있는 개들로 화제가 되었 던 ‘Club 18-30’광고
- 2011 칸느 티타늄을 수상한 ’Decoded Jay-Z with Bing’ 캠페인
- 1990년대말 매니아들에게 돌던 데이빗 드로가 광고모음
- 2015 세계 여성의 날, 잡지, 포스터, 옥외 등에서 여자 를 없애버린 ‘Not There’ 양성평등 캠페인
- 손자, 손녀의 설득을 통해 플로리다주 노인들의 표심 을 얻은 ‘The Great Schlep’ 캠페인
- 다우지수가 내려가면 옷을 벗는 PUMA 언더웨어 App
2015 APRIL 광고계동향 Vol.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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