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대한 기억의 저항

 

 

  기록이 남기는 것은 노력이 아닐 뿐더러 실력도 아니다. 오직 성적일 뿐이다.

  따라서 세월이 흘러가고 남는 것은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기록의 전횡에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딱 한 개, 아니 두 개의 만루홈런과 패전투수라는 '기록'이 다 담지 못하는 이선희의 실력과 노력과 책임감,

  또한 '기록'이 한순간에 가려버린 수많은 업적과 환희의 기억들을 도저히 놓아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운의 스타'라는, 여운이 긴 별명을 붙여 그들을 세월 속에 붙잡아둔다.

 

  우리는 그 비슷한 몇명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국제전 47연승의 신화를 이루고도 올림픽 무대에 단 한 번도 서지 못했던 유도의 윤동식,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다시 일어나고도 부상 때문에 월드컵 출전의 꿈을 또다시 접어야 했던 축구의 이동국,

  그리고 야구의 이선희.

 

  물론 그들은 승리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냥 '패배자'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노력과 실력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운의 스타'다. 그들에 관한 기록을 볼 때마다,

  그들이 흘렸던 땀과 그 정직한 결과였던 실력이 채 반영되지 못했음을 우리는 떠올린다.

  이렇게 기억과 이야기로나마 그들을 추억하는 것이다.

  

  야구는 모름지기 기록의 스포츠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그것이 남기는 드라마다.

  그래서 종종 기록이 드라마를 담지 못할 때면 사람들은 기록과 맞서, 기억을 지키는 작은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기도 한다.

  예컨대 '비운의 스타'같은 별명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기억과 기록이 맞서기로 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억의 편에 있을 작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력서의 숫자 몇 개로 낙인 찍혀 팔려 다니는 초라한 세상 속에서

  야구가 따로 무슨 즐거움이 될 수 있겠는가?

 

 

  [패배자가 아닌 '비운의 스타' - 이선희 中]

 

 

Posted by 크리에이티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Arthur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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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외롭고 절망적이고 어쩌면 불유쾌한 체험이다. 진짜 글쓰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쓰여진 글을 즐길 뿐 종이갈피 사이에 펜을 갈기거나 타이프라이터의 키를 두드리는 실제 작업을 즐기진 않는다.

글쓰기라는 작업을 위해 스스로를 옥죄는 것은 일종의 공포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후의 일각까지 미적거린다. 글쓰기는 끝없는 번잡(煩雜)과 부질없는 의식(儀式)의 반복이다. 마치 야구 투수가 최후에 발을 뻗어 실제 피칭모션을 하기 전에 행하는 무수한 비틀림 동작과도 같다.

종이는 딱맞게 준비되고 타이프라이터와 펜은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커피를 꼭 마시거나 아니면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 창문은 꼭 닫든지 활짝 열어두든지 아니면 적당히 맞춰져 있어야 한다. 의자는 알맞은 높이로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새로 돋아난 목덜미의 우스꽝스런 반점은 침실 거울에 비춰보고 꼼꼼하게 지워야 한다. 빌딩숲 창문에 옆모습이 비친 아가씨에 대해서도 꼼꼼히 뜯어보고 씹어봐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덧없는 의식은 끝이 난다.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것이다...... (후략)

- S.R. Bernstein. 

 

 

The Art of Writing Advertising : Conversations with Masters of the Craft: David Ogilvy, William Bernbach, Leo Burnett, Rosser Reeves, Leo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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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서문: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

 
작가가 말하는 별 도움 안되는 이야기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역사는 이제 너무나 복잡해져서 나 자신조차 말할 때마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또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작정하고 한마디 하면 그때마다 내 말은 엉뚱하게 인용된다. 그래서 이 옴니버스 판의 출판은 이야기를 제대로 바로잡을ㅡ아니면 적어도 확실하게 비틀어버릴ㅡ좋은 기회인 것 같다. 이 판본에 잘못 적힌 게 있다면, 내가 아는 한 그 잘못들은 그걸로 영영 끝이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착상은 1971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한 들판에 술에 취해 누워 있을 때 처음으로 문득 떠올랐다. 특별히 많이 취한 건 아니었다. 그저, 돈 한 푼없는 히치하이커인지라 이틀 동안 내리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에서 독한 괴서Gosser주(酒)를 두어 잔 마셨을 때 취하는, 뭐 그런 정도였을 뿐이다. 우리는 일어나기가 좀 힘드네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켄 월시가 쓴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빌린 닳아빠진 책이었다. 십 년도 넘은 일이고, 그 책은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젠 훔쳤다고 봐야 옳다. 나는 <하루 오 달러로 유럽 여행하기>(그때는 그랬다)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재계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들판은 내 몸 아래서 굼벵이처럼 천천히 빙빙 돌아갔고, 그 위로 밤이 찾아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인스부르크보다 싸고, 덜 빙빙 돌고, 인스부르크가 그날 오후 내게 저지른 짓 같은 건 저지르지 않을 곳이 어디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날 내게 일어난 일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주소를 찾느라 마을을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서 걸음을 멈추고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나는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게 쉬운일이 아니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 특정인과 대화를 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고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해보려고 속절없이 애쓰다가 나는 서서히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인스부르크의 길거리에서 붙잡고 길을 물어볼 수 있었던 그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고른 사람이 하필이면 영어도 못하고 프랑스어도 못하는데다가 청각 장애자였던 것이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손짓을 연거푸 하고서야 나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다른 길에서 다른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봤는데, 그 사람 역시 알고 보니 청각 장애자였다. 그 길로 나는 맥주를 사서 마셨다.


 나는 큰맘 먹고 다시 길로 나와서 재시도했다. 내가 길을 물어본 세번째 사람 역시 청각 장애자이며 게다가 시각 장애자이기까지 한 걸 알게되자, 무시무시한 납덩이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와 건물들은 어둡고 위협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나는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갑작스러운 돌풍을 맞으며 비틀거리면서 길을 달려 내려갔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 미안하다고 더듬더듬 말했는데, 그 사람도 청각 장애자여서 내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늘이 갑자기 노래졌다. 도로가 기울어지며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만일 그때 내가 옆골목으로 홱 피해 들어가 청각장애자 총회가 열리고 있던 호텔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완전히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랬으면 카프카를 유명 인사로 만들고 침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런 종류의 책을 쓰면서 남은 생을 보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나는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가지고 들판에 가서 누웠다. 하늘에 별이 뜨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다면 내가 먼저 총알같이 떠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고, 육 년 동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갔다. 여러 번 목욕을 했고, 그리고 영문학 학위를 땄다. 나는 여자 문제와 내 자전거에 생긴 일들로 속을 많이 태웠다. 나중에 나는 작가가 됐고 많은 글을 썼다. 그 글들은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세상의 빛을 보지는 못했다. 작가들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코미디와 사이언스 픽션을 합친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망상 때문에 나는 빚과 절망에 허덕였다.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마침내 한 사람이 나타났다. 사이먼 브렛이라는 BBC의 라디오 프로듀서였는데, 그도 코미디와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사이먼은 첫 번째 에피소드만 제작하고 BBC를 떠나 자기작품(그는 뛰어난 찰스 패리스 탐정 소설로 미국에서 잘 알려져 있다)을 쓰는데 몰두했지만, 나는 처음 그 일을 가능하게 해준 그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그의 후임으로 온 사람이 전설적인 제프리 퍼킨스다.
 원래 그 쇼는 모양새가 좀 다를 예정이었다. 당시 나는 세상에 불만이 좀 있어서 여섯 개의 다른 줄거리를 만들었는데, 방식도 이유도 각각 다르지만 그 결말은 모두 세상이 끝장나는 내용이었다. 제목은 '세상의 종말'이라고 붙일 셈이었다.


 첫 번째 줄거리ㅡ이 이야기에서 지구는 새로운 초공간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 파괴됐다ㅡ의 세부 사항들을 채워 넣다가, 다른 행성에서 온 인물을 하나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이야기에 필요한 문맥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이며 지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설정해야 했다.
 
 나는 그를 포드 프리펙트Ford Prefect (Prefect는 '제독 혹은 영국 공립학교의 반장'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포트 프리펙트란 이름이 예상과는 달리 튀는 이름이 되어버린 주된 이유는 그것이 포드자동차의 영국 다겐험 공장에서 1938년 이래 약 20년간 내놓은 자동차 모델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ㅡ옮긴이주) 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농담은 물론 미국 독자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미국 독자들은 이 괴상한 이름의 소형차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게 퍼펙트Perfect의 오타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야기에서, 나의 외계인 인물이 이 행성에 연구를 미진하게 한 탓에 이 이름이 "그다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구의 생명체에 대해 잘못 생각했던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실수가 발생할까? 유럽을 히치하이크할 당시, 내가 얻어들은 정보나 충고가 이미 시효가 지났거나 틀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여행 경험담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 순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그 세월 내내 그게 내 머릿속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포드는 안내서에 들어갈 자료들을 모으는 연구원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은 이야기의 중심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고 나머지는, 오리지널 포드 프리펙트를 만들어낸 창조자로서 말하건대, 전부 허풍이다.
 
 사람들이 알면 놀라겠지만,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쌓여나갔다. 에피소드별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치고 나면 다음 회가 어떻게 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는 의미다. 줄거리가 종잡을 수 없이 꼬여가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이 이전에 일어났던 일에 뭔가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듯이 보이면 나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놀랐다.


 이 쇼가 제작되는 동안 BBC의 태도는 맥베스가 사람들을 살해하며 가졌던 태도와 매우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회의하다가, 다음에는 조심스레 열광하고, 그러다가 이 일의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지 깨닫고 점점 더 놀라게 되지만,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제프리와 나, 음향 엔지니어들이 지하 스튜디오에 몇 주씩이고 계속 처박혀 다른 사람들이 시리즈 하나를 몽땅 다 만들 동안 달랑 효과 음향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는 (또한 그 것을 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스튜디오 사용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는) 소문은 강력하게 부인되었지만 전적으로 사실이다.
 이 시리즈의 예산은 점점 치솟아, 마침내는 <달라스>를 몇 초 분량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 쇼가 성공하지 못했으면, 정말이지....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78년3월8일 수요일 저녁10시30분에 BBC 라디오 4채널에서 방송되었다. 휘황찬란한 광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박쥐들이 이 방송을 들었다. 이상한 개가 울부짖었다. 
 몇 주가 지나자 편지들이 한두 통 찔끔찔끔 날아들었다. 그러니, 저 바깥의 누군가가 듣기는 했던 것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편집증 환자 안드로이드인 마빈 같았다. 마빈은 그냥 한 장면을 재미있게 해보려고 집어넣었다가 제프리가 고집을 피워서 더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러다가 몇몇 출판사가 흥미를 가지게 됐고, 나는 이 시리즈를 책으로 써달라는 청탁을 영국  팬 북스Pan Books에게서 받게 됐다. 엄청나게 꾸물대고 숨고 변명거리들을 꾸며대고 목욕을 한 후에야 삼분의 이 정도를 겨우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 시점에 그 사람들은 매우 쾌활하고도 공손하게 말했다. 이미 내가 마감을 열 번이나 어겼으니 지금 쓰고 있는 페이지나 마저 쓰고 그 빌어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그러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시리즈를 하나 구상하느라 바빴고, 또 텔레비전 시리즈 <닥터 후>를 쓰고 스크립트 편집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라디오 시리즈, 특히 누군가가 편지를 보내 자기가 들었다고 말하는 그런 시리즈를 갖는다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딱히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1979년 9월에 영국에서 출간되었을 때의 상황은 대충 이랬다. 이 책은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그냥 그 자리에 계속 눌러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 서문을 쓰면서 내가 성명을 부탁받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안내서'는 너무나 많은 형태로 나왔다. 책, 라디오, 텔레비전 시리즈, 레코드로 나왔고, 조만간 메이저 영화로도 나오게 된다. 그런데 매번 줄거리가 조금씩 달라져서 심지어 가장 열렬한 독자도 헷갈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여기서 각각의 버전들을 분석하도록 하겠다. 단, 여러가지 연극 버젼은 포함시키지 않겠다. 이 연극들은 미국에서는 상연되지 않은 만큼 괜히 문제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니까.
 라디오 시리즈는 영국에서 1978년 3월에 시작됐다. 첫 번째 시리즈는 여섯 개 프로그램, 혹은 소위 여섯 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이야기 1에서 6까지. 이건 쉽다. 그해 말에 에피소드 하나가 더 녹음되어 방송되었는데, 그게 이른바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다.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라고 불리는 것은 처음 방송된 날이 12월 24일이었기 때문인데, 사실 그날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그 후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1979년 가을에 첫 번째 <안내서>가 영국에서 출판되었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고 불렸다. 이 책은 라디오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네 개를 상당히 확징시킨 버전인데, 여기서 어떤 인물들은 완전히 다른 식으로 행동하고, 또 어떤 인물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똑같은 행동을 한다. 사실 결과야 마찬가지지만 대화를 다시 쓰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더블 레코드 앨범이 출시됐는데, 이것은 책과 반대로 라디오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네 개를 약간 축약한 버전이다. 이 앨범들은 원래의 방송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똑같은 스크립트를 완전히 새로 녹음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것은, 우리가 라디오 시리즈의 임시 음악으로 사용한 음악이 축음기 레코드에서 녹음한 것이어서, 라디오에서야 괜찮았지만 상업적 발매용으로는 쓸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 1월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새 에피소드 다섯 개가 한 주 동안 BBC 라디오에서 더 방송되었고, 이제 전체 에피소드는 열두 개로 늘어났다.
 1980년 가을에 두 번째 <안내서>가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하모니 북스Harmony Books가 미국에서 첫 번째 책을 출간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이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라디오 시리즈 7, 8, 9, 10, 11, 12, 5, 6 에피소드(이 순서대로다)를 대부분 새로 쓰고, 새로 편집하고, 축약한 버전이었다. 그게 너무 간단한 일처럼 보일까 봐, 책 제목을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이라고 붙였다. 여기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라디오 에피소드 5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밀리웨이스, 다른 이름으로는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이라고 알려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두 번째 레코드 앨범이 라디오 시리즈의 에피소드 5, 6을 엄청나게 새로 쓰고 확장한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이 레코드앨범의 제목 역시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는 동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텔레비전 시리즈 에피소드 여섯 개가 BBC에서 만들어져 1981년 1월에 방송됐다. 이것은 대부분 라디오 시리즈의 처음 여섯 개 에피소드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대부분과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의 뒷부분 절반 정도가 합쳐져 있다. 그런 관계로 이 텔레비전 시리즈는 라디오 시리즈의 기본 구조를 따르지 않은 출판본의 개정 내용을 흡수한 셈이다.
 1982년 1월에 하모니 북스는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을 미국에서 출판했다.
 1982년 여름, 히치하이커 시리즈 제3권이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다. 제목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이었다. 이 책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이미 듣거나 본 어떤 이야기도 토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은 라디오 시리즈의 7, 8, 9, 10, 11,12 에피소드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였다. 기억하겠지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이 에피소드들은 이미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책에 개정된 형태로 들어갔다.
 
 이 시점에 나는 미국에 가서 영화 대본을 썼는데, 그 대본은 그 때까지 나온 이야기와는 앞뒤가 거의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화 제작이 연기되었기 때문에 (현재 소문에 의하면, 영화 촬영은 최후의 심판일 직전에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삼부작에 추가되어 마지막이자 네 번째 책을 이루게 되는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를 썼다. 이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1984년 가을에 출판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 책 자체를 포함해 그때까지 나온 모든 것과 사실상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로도 아직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 나는 인포컴Infocom이라는 회사를 위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의 컴퓨터 게임을 썼는데, 그 내용은 이제까지 이 제목으로 나온 모든 것들과는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유사성밖에 없다. 그리고 제프리 퍼킨스와 같이 정리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라디오 스크립트 원본>을 냈다(영국에서 1985년에 출판). 이 일은 흥미로운 모험이었다.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듯 방송된 라디오 스크립트 전체를 모아 수록한 것이며, 따라서 히치하이커 출판본 중에서 또 다른 히치하이커 출판본을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반영하는 유일한 예다. 나는 이 점이 좀 마음에 걸렸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그 책의 서문은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책이 나온 '이후에' 쓰였으며,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어떻게 하면 이 행성을 떠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간략한 정보를 준비했다.
 


 <이 행성을 떠나는 법> 

1. 나사NASA에 전화하라. 전화번호는 (713) 483-3111이다. 당신이 지금 당장 떠나는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2. 그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백악관ㅡ(202) 456-1414ㅡ에 있는 아무 친구에게나 전화해서, 나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 좀 해달라고 하라.

 
3. 백악관에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크렘린에 전화하라(0107-095-295-9051로 전화해 국제 교환수에게 크렘린을 대달라고 하라). 그 사람들도 백악관에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적어도 남들한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 영향력은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도해볼 만하다.

 
4. 그것도 안 되면, 교황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라. 교황의 전화번호는 011-39-6-6982다. 내가 듣기에 교황의 교환수는 절대로 잘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가톨릭에서 교황은 '절대무류(無謬)infallible'라고 간주되는데 이를 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ㅡ옮긴이주).

 
5. 이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 신호를 해서 지나가는 비행접시를 정지시킨 다음, 전화 요금 청구서가 날아들기 전에 이 행성을 벗어나는 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더글러스 애덤스
1983년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1985/1986년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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