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남다른 브랜드를 창조하다 - “아무것도 믿지 마라. 내 최고의 경쟁력은 눈과 혀”
비비고 : 브랜드는 자라고, 다치고, 죽기도 하는 생명체다
비빔밥으로 한국의 맥도날드를 만들겠다는 꿈
나는 내가 만든 브랜드를 모두 나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낳고 기른 자식이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모두가 소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CJ의 비비고(bibigo)는 내게 각별한 브랜드다.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나만의 바람을 실현해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처음 먹고 진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주문하고 몇 분도 안 되어서 뜨끈뜨끈한 고기가 빵에 싸여 나왔는데 비주얼부터 맛까지 전부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한식도 패스트푸드처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맥도날드처럼 세계적인 한식당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비빔밥의 세계적 위력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도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1위는 단연 비빔밥이었다. 외국인 기준에서도 비빔밥은 매력적인 한국 음식일 수밖에 없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식 재료가 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비빔밥은 외국인들이 보더라도 대단히 건강한 음식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건강식으로는 샐러드가 있다. 하지만 샐러드 자체도 완벽한 식품은 아니다. 채소만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해 닭가슴살이나 새우를 추가하거나, 탄수화물을 고려해 퀴노아 등의 곡물을 넣기도 한다.
그런데 비빔밥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갖춘 음식이다. 밥과 채소, 고기까지 들어가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타민 등 영양 밸런스가 맞춰진 건강식이다. 게다가 비빔밥에 들어가는 데친 나물은 샐러드에 들어가는 같은 양의 익히지 않은 채소보다 영양적으로도 우위를 갖는다. 생채소보다 익힌 채소가 체내에서 더 잘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부터 시각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비빔밥이야말로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나의 오랜 바람을 이루어줄 음식이라고 생각해왔다.
권력은 의자에 앉았을 때가 아니라 두 발로 뛰어다닐 때 생긴다
나는 늘 브랜드를 기획하는 초반 단계에서 모든 관련 부서를 소집해 원탁회의부터 한다.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준비시키는 것이다. 시작 단계부터 모두가 일의 방향을 인지하면, 함께 시작한다는 마음에 단체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 속에서 ‘우리의’ 브랜드가 탄생한다. 노희영이 기획은 했어도 우리가 함께 키운 브랜드가 된다.
CJ에서도 한식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 대체식품) 브랜드에 대한 회의를 계속했고, 그렇게 이어진 토론 끝에 ‘비비고’라는 브랜드 이름이 탄생했다. ‘비비고(bibigo)’는 비빔밥의 ‘비빔’과 영어 ‘go’를 합친 합성어다. 섞는다는 의미의 ‘비빔’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이며, ‘go’는 한식 세계화를 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비비고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한식 세계화 브랜드의 통합이었다. CJ 안에는 백설, 햇반, 해찬들 등 여러 브랜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해찬들 고추장은 해찬들대로, 햇반은 햇반대로 전부 다 각자의 사업 목표를 가지고 세계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세계화 브랜드는 ‘비비고’ 단 하나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각 브랜드 매니저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하지만 나는 모든 반발을 나만의 설득으로 헤쳐나갔고,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때는 고집으로 밀어붙였다.
나의 권력은 끊임없는 노력으로부터 나왔다. 대부분의 대기업 임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정신없다. 하지만 오리온의 부사장으로, CJ의 고문으로 두 개의 회사를 오갔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없던 일도 만들고, 자발적으로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비비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마다 끊임없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사람들을 만났다. 반발하는 사람도 설득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설득하며 그렇게 비비고를 탄생시켰다.
기획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눈과 입을 가져라
비비고의 맛은 철저히 소비자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파스타를 개발했다고 하자. 그러면 제일제당 개발팀에서는 풀무원이라든가 여타 경쟁사 파스타를 먹어보고 그것보다 맛있는 파스타를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내가 기획을 할 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공급자 마인드가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관찰하는 것은 이제 나에게 일상을 지배하는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나는 하다못해 어느 지역에 어느 식당이 인기 있다고 하면 바로 가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가끔은 직원을 대신 보내기도 하는데, 다녀온 직원이 “그 집 별것도 없던데요”라는 말을 할 땐 혼쭐을 낸다.
잘되는 집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만약 맛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선다면 인테리어, 플레이팅, 특별한 메뉴 등 맛을 능가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예민한 관찰력과 호기심으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설사 하늘에서 보석이 떨어진다 해도 그 보석에서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게 소비자다. 반면 아주 미세한 차이에도 환호하고 손뼉 치는 사람들 역시 소비자다. 기획자라면 변덕스럽고 예민한 소비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진정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단, 단순히 소비하고 평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스스로 질문하고 이유를 찾아내는 예리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트렌드는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다. 작은 파도와 바람에도 흔들리고, 그 방향이 바뀐다. 그래서 기획자는 멀리서 그 배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트렌드라는 배에 올라 파도를 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읽는 게 아니라 트렌드 안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불어넣는 일, 스토리텔링
각각의 브랜드에 스토리를 만들다
전경련 회관 50층에는 세상의 모든 아침, 사대부집 곳간, 곳간 그리고 연회 공간인 프로미나드, 이렇게 네 곳을 만들기로 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브랜드지만 나는 각각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랜드의 스토리가 곧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공간 전체의 명칭을 ‘더 스카이 팜’으로 정했다. 하늘에 가까운 농장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더 스카이 팜’뿐 아니라 전경련의 콘셉트도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51층 가든 팜을 모티브로 한 ‘농사짓는 전경련’이다.
나는 전경련이 농부를 도와야 하고 농부도 전경련에 가입하는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부들도 성공하는 세상, 전국에 있는 농부들이 전경련 마당에 와서 제품을 팔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전경련 꼭대기 층에서는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아침’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침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매일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 한다. 이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다.
또 아침은 매일 신선한 재료로 하루를 맞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레스토랑 이름을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아침 식사를 메뉴로 정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는 세계 각국의 아침 식사와 그 안에 담긴 그들의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외국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대부집 곳간’과 ‘곳간’은 전경련이라는 단체와 관련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모인 전경련을 사대부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과거 사대부 문간방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지금은 전경련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내 나름대로 정의했다.
결혼식 등 연회가 가능한 공간을 프로미나드라고 이름 지은 것은 그 의미가 ‘행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부부가 새롭게 시작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축복받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작은 연회 공간에 ‘행진과 시작’이라는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나의 마케팅 전략은 ‘백 코에 한 코’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성공 요인은 바로 콘셉트다. 브랜드 이름과 브랜드의 분위기가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나와 기획팀은 브랜드 기획 과정에서 북유럽, 호주, LA를 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브랜드에 뉴욕, 파리의 세련된 느낌이 아닌, 넉넉함이 담긴 따듯한 가정식 이미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테리어와 식기, 직원 유니폼에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녹이려 했다.
요즘은 플라워 프린트 접시들을 많이 쓰지만, 세상의 모든 아침 개장 당시에는 그런 접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많은 레스토랑이 깔끔하고 단순한 스타일의 그릇을 사용했다.
그래도 식당은 역시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고 그릇이 예뻐도 맛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는 것 아니겠는가. 그 맛을 홍보한 사람들, 사실상 세상의 모든 아침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이다.
마케팅은 ‘백 코에 한 코’라고 생각한다. 뜨개 바느질에 비유한 말인데, 백 번 행동했을 때 그중 하나가 얻어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마케팅에는 전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백 코를 떴을 때 그 백 코는 노력을 의미하며, 그 노력은 운이 아니다. 그리고 그중 한 코가 걸리는 게 마케팅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여러 가지 갈래의 마케팅을 진행하면 그 중 어느 하나가 성공해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무모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요즘 마케팅의 채널과 대상이 너무나 다양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확실히 5년 전 ‘한 코’는 인플루언서였다. 요즘 인플루언서는 1인 기업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미친다.
나는 인스타그램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 위력을 실감한 후에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열심히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진을 올리는지도 관찰한다. 지금은 나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어 나의 브랜드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나은 브랜드로 성장시키다 - “무모한 모험이 아닌 계획된 도전을 한다”
올리브영 : 주제 파악을 하라, 그것이 차별화 전략이다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을 멈추는 것이 변화의 시작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많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있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나는 브랜드 일을 할 때 나와 브랜드를 동일시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 남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나, 내가 발전시키고 싶은 나 등. 그 여러 개의 ‘나’ 중에 나의 무엇을 팔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주제 파악이다.
보통 열위에 있는 브랜드는 우위에 있는 브랜드를 좇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따라 하고 싶은 그 마음을 멈추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경쟁업체와의 차별화 전략은 우리 브랜드의 장점에 집중할 때 나온다.
올리브영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대체로 중저가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 부담은 없으면서도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편집숍이 되려면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 내가 생각한 올리브영의 방향은 딱 하나였다.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 창피해서는 안 된다.
올리브영의 주요 타깃은 젊은 여성이다. 여성 타깃 비즈니스는 무조건 디자인 싸움이다. 잡화점이 갖는 ‘평범하고 저렴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콘셉트부터 바꿔야 했다.
매장 비주얼을 혁신하기 위해 유명 건축가 마영범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셨다. 간판 컬러부터 매장 인테리어, 고객의 동선을 고려한 제품 진열 방식까지 다 바꿨다. 올리브영 쇼핑백을 든 고객이 창피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포장지 디자인까지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숍의 생존 전략: 고도화된 큐레이션과 스피드
올리브영을 이야기할 때 배놓을 수 없는 건 ‘큐레이션’이다. 각기 다른 물건을 모아놓고 판매하는 업종 특성상, 제품군을 선정하고 고객이 잘 찾을 수 있게 진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미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이다. 입소문 난 국내 제품뿐 아니라 외국 여행 가면 꼭 사오는 물건들까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스피드’였다.
올리브영을 가장 ‘핫’한 제품이 있는 곳으로 만들자.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제품들은 이미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므로, 어떻게든 국내에 빨리 들여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이해하고 빠르게 수입해온 것이 올리브영만의 무기였다.
올리브영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믿고 살 수 있다는 인식도 높여야 했다. 당시 뷰티 컨설턴트들이 활약하기 시작할 때라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신경을 썼고,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는 제품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지도 분석하면서, 각 제품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진열할지도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한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팅한다는 콘셉트를 부각하기 위해 뷰티 제품 외에 건강보조식품과 같은 헬스케어 제품을 엄선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올리브영에 주기적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매장 디스플레이가 자주 바뀌는 것을 알 것이다. 새롭고 즐거운 매장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신제품 소개다. 그러다 보면 디스플레이를 수시로 바꿀 수밖에 없다. 고객의 시선과 발길을 어디에 멈추게 할 것인지 공간이 가진 힘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영은 이런 ‘경험 마케팅’과 ‘비주얼 마케팅’의 개선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고 지금도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비주얼 마케팅을 맡아준 마영범 선생님과 이 모든 콘셉트를 수용해준 올리브영 허민호 대표님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광해 : 마케팅의 시작은 제품이 기획되는 순간부터
마케팅은 늘 기획의 시작과 함께 출발하는 것
대기업의 R&R은 대단히 치밀한 구조다. 영화를 만들 때, 개발은 R&D에서 하고 구체적 설정은 시나리오 팀에서 맡는다. 이렇게 영화 기획이 시작되면 다음은 제작사와 미팅을 한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하더라도 영화 제작은 제작사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완성되어 시사회를 할 즈음에 마케팅을 준비한다.
하지만 <광해>는 이런 시스템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영화 기획 초반부터 마케팅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도 사업이기 때문에 마케팅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영화가 아닌 다른 제품의 기획을 시작할 때도 나는 늘 마케팅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영화 업계 사람들에게 마케팅 담당자가 제작 단계부터 개입하는 것은 굉장히 생소한 일이다. 마케팅의 역할은 영화 제작이 끝난 후 도와주는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누가 뭐래도 예술 작품이고 감독의 콘텐츠다. 영화 제작 단계부터 상업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영화 업계 사람들은 거북함을 느꼈을 것이다.
종종 영화 업계 사람들과 사업가들 간의 긴장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사실 이런 긴장 관계는 오늘날 한국 영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대중성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케팅은 제품 하나가 아니라 회사 전체를 홍보하는 것
나는 <광해>의 첫 씬부터 마지막 씬까지 매일 보고받았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상차림은 우리 팀에서 맡아 진행했는데 그중 내가 깊이 관여한 것이 바로 ‘팥죽 씬’이다. 팥죽은 또 다른 광해군 ‘하선’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미장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팥죽은 실제로 우리 팀에서 만들었다. 나는 영화 제작이 끝난 후 <광해>의 사진을 넣어 팥죽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팥죽뿐 아니라 CJ에서 판매하는 다른 음식에도 <광해> 사진을 사용했다.
회사에서는 이런 나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뒷말도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의 팥죽을 제품화하고, 거기에 배우 사진까지 넣는 것은 대기업에서 나오기 힘든 발상이기 때문이다.
설사 이렇게 생각했다 해도 대부분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하지 못해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자존심을 걸고, 또 배우들의 이름을 걸고 시장에서 싸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금방 지나가는 짧은 장면이지만, 이것 또한 회사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이다. 기획이든, 마케팅이든,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와 일은 제품 하나만 알리는 것이 아니다. 회사 전체를 홍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콘텐츠 플랫폼 회사가 집중하고 있는 ‘미디어 커머스’다.
마케팅은 타이밍, 이슈를 찾아라
<광해>는 리더나 리더십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영화였다. 영화가 개봉하는 2012년 9월은 마침 18대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대통령 후보자들이게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개봉하오니, 보러 오세요”라고 각 당에 홍보했다.
마케팅은 누가 그것을 회자시키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이슈메이커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광해>가 개봉한 시기는 선거철이었으니 정치인들이 모든 이슈를 선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어필해야 했다.
영화 개봉일이나 상품 출시일을 미리 정해놓았다 하더라고, 이슈는 매 순간 변한다. 따라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마케팅은 최대한 준비해놓되, 상황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을 시의적절하게 해야 한다. 특히 영화의 경우, 개봉 시기의 이슈를 잡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행히 <광해>는 그것이 잘 맞았다.
처음에 저예산으로 기획되었던 <광해>는 CJ엔터테이먼트의 손길로 완성되어 개봉하자마자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광해>의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4빅시즌(여름방학, 설날, 추석, 연말연시)이 아닌 비수기에 개봉했다는 점이다. <광해>는 추석 3주 전에 개봉했는데, 추석 대작으로 기획된 타 영화들과 상대해 결국 기록을 만들어 냈다.
‘노희영’이라는 리더의 모습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고 부른다. 차가운 말투와 매서운 표정에서 시작된 별명인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가끔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쓴소리도 하고, 냉정하게 굴기도 한다. 또 자나 깨나, 눈을 감으나 뜨나 매사에 너무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직원들이 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했을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더라면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를 제외하면, 늘 직원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그들에게 ‘나는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충분히 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이 ‘리더가 나를 신경 쓰고, 챙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나에겐 이런 따듯한 부분이 많이 부족했고, 아직도 부족하다. 이제 와 생각하니 나의 옛 직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말 안 해도 알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 나의 게으름이었다. 지금은 매번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직원들을 살펴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틈틈이 따듯한 말을 건네려고 노력한다.
직원들도 리더 때문에 괴롭겠지만, 리더도 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울 때가 많다. 나는 그 해답으로 <광해>의 ‘연민’을 제시하고 싶다. <광해>의 흥행 비밀은 사람들은 늘 광해군과 같은 리더십을 원한다는 데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리더와 함께할 때, 직원들은 괴롭고 힘든 상황도 견뎌낸다. 그러니 직원들을 연민으로 돌보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브랜드를 가장 많이 만든 여자의 팔리는 기획, 마음을 사로잡는 마케팅 법칙 12가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랜드 “마켓오, 비비고, 계절밥상, 제일제면소, 백설, CGV, 올리브영, 갤러리아 백화점,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빕스, 다시다, 프레시안, 햇반, 해찬들, 쁘티첼, CJ오쇼핑, 산들애”뿐 아니라 천만 영화 ‘광해’ ‘명량’의 마케팅까지 노희영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30년 경력의 브랜드 컨설턴트인 저자가 론칭한 브랜드는 200여 개, 오픈한 매장은 2500여 개에 달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매일 하나쯤은 노희영의 브랜드를 접할 정도로 저자는 많은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기획·마케팅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다.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은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 컨설턴트 노희영의 30년 노하우 중 가장 핵심만을 꼽아 12개의 법칙으로 소개한다. 특히 공개된 적 없는 30여 개 브랜드의 성공 과정을 담고 있어 트렌디한 콘셉팅 노하우, 허를 찌르는 마케팅 전략, 경영 기본 원칙, 퍼스널 브랜딩 방법 등 노희영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거듭나게 한 비밀을 알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저자의 일하는 방식, 일에 대한 철학을 부록으로 구성했다. 노희영의 12가지 브랜딩 법칙과 일에 대한 신념은 진정한 리더와 선배의 가르침이 필요한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 컨설턴트, 영업자, 디자이너, 경영인, 창업자에게 큰 울림을 가져다줄 것이다.
■ 저자 노희영
저자 노희영은 브랜드 컨설턴트이다.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한 후 오리온 롸이즈온 콘셉트 개발담당 이사, 오리온그룹 부사장,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YG푸즈 공동 대표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비앤어스, 식음연구소, 넥스트에이드 대표로 일하고 있다. 노희영이 주로 하는 일은 세상에 없던 브랜드를 기획, 마케팅하는 것과 이미 만들어진 브랜드를 새롭게 리노베이션하는 것이다. 기획한 브랜드는 마켓오, 비비고, 계절밥상, 제일제면소, 삼거리푸줏간, 쓰리버즈, 세상의 모든 아침, 평양일미, 퍼스트+에이드 등 총 200여 개에 달한다. ‘명량’ ‘광해’ ‘설국열차’ 등의 영화 마케팅에도 참여했다. 리노베이션한 브랜드로는 백설, CGV, 올리브영,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빕스, 다시다, 프레시안, 햇반, 해찬들, 쁘띠첼, 올리브TV, CJ오쇼핑 등이 있다. Olive ‘마스터셰프 코리아’, SBS ‘집사부일체’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노희영의 즐거운 초대요리』(2003), 『히노스 레시피』(2013)를 출간했다.
■ 차례
우리에게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
PART 1 남다른 브랜드를 창조하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내 최고의 경쟁력은 눈과 혀”
-마켓오 : 새로운 창조보다 ‘한끗’ 차이를 만든다
-비비고 : 브랜드는 자라고, 다치고, 죽기도 하는 생명체다
-계절밥상 : 브랜드 철학이란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
-세상의 모든 아침 :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불어넣는 일, 스토리텔링
-삼거리푸줏간 : 브랜드에 닥친 위기, 절망 대신 해야 할 일을 찾는다
-퍼스트+에이드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브랜드의 방향을 제시하다
PART 2 더 나은 브랜드로 성장시키다
“무모한 모험이 아닌 계획된 도전을 한다”
-백설 : 지켜야 할 자산을 아는 것이 리뉴얼의 시작
-CGV : 치밀한 상상력으로 공간을 리노베이션하다
-올리브영 : 주제 파악을 하라, 그것이 차별화 전략이다
-갤러리아 백화점 : 특수와 독점을 무기로 VVIP 고객을 사로잡는 법
-광해 : 마케팅의 시작은 제품이 기획되는 순간부터
-명량 :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를 증명하는 것이 내 일이다
브랜드 컨설턴트 ‘노희영’이라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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